>  채경석의 여행이야기  > 2화 :  마데이라의 레바다 워크

2화 : 마데이라의 레바다 워크

마데이라 군도는 15세기 포르투갈이 해양으로 뻗쳐 나갈 때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당시엔 선점 주의 시대이니만큼 먼저 깃발을 꽂으면 내 땅이고 내 것이었으니 앞서 간 포르투갈엔 마데이라 말고도 세계 곳곳에 그런 영토가 많았다.
대서양에는 아조레스, 아프리카엔 세우타(Ceuta),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고아(Goa), 남미엔 브라질 등에 해외 식민지와 무역 거점 항구를 개척했다. 바다를 지향한 나라였기에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나라를 통으로 먹기보다 항해에 필요한 거점들을 지배했으며 그것으로 만족했다. 동방무역을 책임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와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으로 향했고 상선이 향료를 가득 싣고 돌아올 때마다 나라는 부강해졌다.
아프리카 연안을 떠나 포르투갈로 귀환하던 배의 무사 귀환을 환영하던 곳이 마데이라 섬이다. 마데이라를 지나면 곧바로 리스본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뱃사람들에게 마데이라는 환희와 희망의 섬이었다.

말라카 해협

마데이라 섬은 섬 중앙에 화산이 가파르게 솟구쳐 북부와 남부의 기후대가 확연히 다르다. 북부는 습한 해류가 피어올라 늘 안개에 싸여있지만 산을 넘으면 해맑고 건조한 대기가 기다린다. 습한 대기가 산을 넘으며 비를 다 뿌리고 열기를 뿜는 푄(Föhn)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쪽에 도시를 이루며 살고 북쪽엔 작은 해안 마을 몇 개가 전부다. 또 남부의 메마른 대지엔 물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물은 산릉의 화산 고원과 북쪽 계곡에 모여 있어서 마데이라 주민은 수고를 마다치 않고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수로를 레바다(Levada)라고 부르는 데. 마데이라 섬의 레바다 총 길이는 2,000km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데이라 섬의 첫 여행은 레바다 워킹(Levada walks)을 택했다.

화산 능선 위로는 움푹 패어 늪지를 이루는 25개의 호수가 있으며 이곳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따라 걷는 트레킹이다. 가파른 사면을 다듬어 채소를 심는 밭이 옹기종기 펼쳐지고 그 사이로 농가가 자리 잡은 한가로운 수로길이다. 이 물을 끌어오기 위해 600m의 절벽을 손으로 깎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된 수로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마치 훈자의 수로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훈자 빙하에서 흘러내린 탁한 물을 마을로 끌어 오기 위해 사람들이 절벽에 수로를 낸 훈자수로.

수로를 따라 걷는 네바다 워킹

가이드는 수로에 혈관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의 대동맥같이 물은 수로를 타고 마을로 들어와 한곳에 모이고 작은 물길을 타고 텃밭으로 흘러든다. 수고(水庫)엔 물을 통제하는 수문(水門)이 여러 개 달려있다. 하나의 수문에는 13개의 테라스가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저 수문만큼의 밭이 마을에 있다는 것이겠지.. 물을 함께 공유하며 공존, 공생하는 삶. 레바다 워킹은 물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트레킹이다. 건조한 남부에서 한번, 습한 북부에서 한번, 레바다 워킹을 하고 보니 마데이라 사람들의 삶을 본 듯하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수로를 누가 만들었을까?
가이드는 13세기 이슬람의 엔지니어들이 와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수십 km를 잔잔히 흘러 목적지까지 막힘없이 흘러가는 수로의 역할과 경사와 물의 흐름을 고려한 수치적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간단한 것 같아도 공학적 기술의 집합체이다. 수로는 도시 생존의 필수고 건조 지대 농업의 필수 조건이다. 도시경제였던 로마는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외곽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 건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현재도 수로하면 로마 수로를 떠올릴 만큼 대단한 토목건축물을 남겼다.
페르시아 건조 지대에서는 풍차와 수차를 이용하는 기술뿐 아니라 지하수로 건설까지 다양한 물 공급 기술이 발달했다. 그런 기술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중국의 산강까지 전해져 현재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숲 속의 길, 레바다 워킹

마데이라 수로는 로마나 페르시아의 수로만큼 화려하지는 않아도 작은 섬에 이만한 수로를 건설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인간의 집념으로 보인다. 그만큼 인간이 이 섬에 많이 거주했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이 거주할 만큼 섬이 중요했다는 것이 아닐까.. 물이 없다면 많은 인구의 거주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13세기 리베리아는 이슬람의 기운이 점차 쇠퇴하고 가톨릭의 기운이 흥성하던 시기였다. 특히 톨레도에서는 제2의 문예부흥(제1의 문예부흥은 9세기 압바스 왕조 때)이 일어나 이태리에 르네상스의 기운을 북돋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톨레도의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이슬람 세력은 12세기에 들어서면 점차 가톨릭 세력에 밀리기 시작했고 리베리아 이슬람의 중심지인 톨레도는 가톨릭 세력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이때 가톨릭 세력에 쫓긴 모슬렘이 마데이라로 이주해와 정착하기 시작한 게 아닌지.
가이드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 대답할 수 없다는 묘한 답을 주었다. 어떤 이유든 희랍의 학문과 로마의 실용기술이 다시 되살아나는 시점에 마데이라의 수로(Levada)는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로는 마데이라의 상징이 되었다. 문예부흥을 이끌었듯이 마데이라의 부흥을 이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