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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지상 마지막 파라다이스 

 

산에서 뛰어놀던 20대 ~ 50대까지 선후배로 알고 지낸 지인이 세이셸 명예영사가 되면서 저에게 선물이 왔습니다. 세이셸 초대입니다. 총 7일간 일정이 아쉬워 아프리카에 가는 김에 마다가스카르를 가겠다고 항공을 추가로 예약했습니다.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된 바오밥 나무 군락지와 창가 국립공원의 특이한 지형을 걸어보겠다고 호기 좋게 비행기 표를 끊었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 마다가스카르를 포기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사서 그런지 환불을 요청해도 회신도 없고 전화를 해도 항공사는 전혀 반응이 없네요.
세이셸 → 마다가스카르 왕복 $850, 마다가스카르 수도인 안타리리보 → 모론조바 편도 260유로를 지불했건만 하나도 환불이 안됩니다. 세이셸 항공은 기다려보라 하고는 감감무소식이고, 마다가스카르 항공은 환불이 안되니 다음에 갈 때 싸게 준다고 하는데 그게 실현 가능성이 있나요… 세상에 이런 경우가 다 있네요…
안타나리보 → 모론조바 구간은 마다가스카르 내에서의 도시 이동인데도 260유로나 하니, 국내선 편도인 걸 감안하면 비행깃값이 정말 비싼 편입니다. 속이 많이 상했지만 싼 비행기 표 구하려다 발생한 일이니 누굴 탓하겠습니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세이셸로 떠났습니다.

[세이셸의 해변]

관광청에서 항공과 식사가 포함된 호텔은 물론 차량과 가이드, 섬 이동 보트까지 모든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니 세이셸은 포기할 수 없어서 만사 제쳐놓고 짐을 챙겼습니다. 인천공항 아랍에미리트 카운터에서 수속을 마치니 식권을 줍니다. 비행기가 연발해서 주느냐고 물어봤더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주는 식권이라고 합니다. 두바이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름이 적힌 식당에 찾아가 식사를 하라고 안내하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요…
아랍에미리트 항공의 새로운 영업 전략인 듯합니다. 10시간을 날아 두바이 공항에 내려 Meal Voucher를 들고 리스트에 있는 식당을 하나씩 찾았습니다. 대부분이 Fast Food인데 뷔페식당이 하나 있어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았습니다. 한 층 올라가야 해서 물어보지 않았다면 찾을 수 없는 위치였습니다. 뷔페식당은 넓고 고급스러운 식당이라서 무료 식권을 들고 들어가자니 미안한 맘이 듭니다. 안내하는 직원은 조식 뷔페 이외에 차와 커피 중 하나, 생수와 주스 중 하나만 된다고 강조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어디 그렇게 되나요… 사람들은 물과 주스, 커피까지 구분 없이 다 마십니다. 중국 여행객들에겐 익히 알려진 정보인지 식당은 중국 여행객들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중국 항공수요를 보고 채택한 서비스인지도 모르죠. 중국의 수요를 무시하고 생존할 항공사는 어디도 없을 테니까요…
아침을 든든히 먹고도 공항의 대합실을 두 번이나 더 돌았습니다. 10시간 동안 앉아있느라 배에 가득했던 가스도 빠지고 몸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그 기분 그대로 세이셸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는 반이 비었네요. 제가 앉은 4인석은 저밖에 없어 저는 운 좋게 누워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알마티에서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를 타고 귀국하는데,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던지요, 승무원의 서비스는 또 얼마나 친절하고 식사도 좋던지요, 그런데 그보다 좋은 자리가 침대칸이니 분명 횡재한 날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인천에서 출발할 때 비즈니스 입구에 줄이 길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즈니스는 손님이 적어 항상 입구가 비어있고 줄을 서서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비즈니스 승객이 많은 건 두바이라는 부국(富國)으로 가는 비행기니까 그렇겠죠, 비즈니스 줄에 선 사람들 대부분이 백인이고 중동계였습니다. 동양인은 몇 명 없었으니, 잘 사는 나라로 가는 비행기라서 그런가 봅니다.
‘행복여행’이란 책에서 저자는 두바이를 부자여서 행복한 나라로 꼽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누구나 70,000달러의 급여가 보장되고 조금만 잘나면 10만 불 정도 받는다는 나라입니다. 미국 로스쿨을 나와 국제변호사 자격을 딴 조카가 국내에 들어와 받은 첫 연봉이 10만 불이었는데, 주변에서 얼마나 부러워했던지요… 하지만 그 녀석은 대학에 대학원, 국제변호사 시험, 재수까지 8년이란 세월이 걸렸고, 그것도 어렵다는 로스쿨에 들어가야 보장되는 소득수준인데, 두바이는 누구나 대학만 졸업하면 그 정도를 준다니 알라만이 전부인 세상인 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세이셸 가는 비행기는 어떤가요… 마초들이 득실거립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마초의 이미지를 심어 성공한 대통령이라는데, 그걸 따라 하는지 근육질의 덩치들이 거친 러시아 말을 토해내며 소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여자한테 친절하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걸 보면 무식한 마초들은 아닌 거 같습니다. 비행기의 대부분이 러시아 사람들인 이유가 뭘까요. 저는 공항에 마중 나온 관광청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러시아는 춥고 세이셸은 따뜻하니까요. 그들은 태양을 찾아온 겁니다.”
너무나 명쾌한 답이었습니다. 길게 줄을 선 러시아 관광객을 뒤로하고 특별 VIP 창고로 나오려니 마초들이 저를 부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 저 오빠는 누구야” “글쎄, 아마 높은 사람 같다. 아니면 부자이든가.”
옆에 섰던 애가 아빠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아니죠. 낡은 배낭을 짊어진 가난한 여행객인데요…
러시아는 경제 위기를 겪어도 미리 쓸 돈을 챙겨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겨울이면 이집트 홍해로, 인도양의 세이셸로, 그리스의 에게 해로 여행을 떠납니다. 중국 여행객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두바이는 이미 초 만 원이구요, 세이셸도 중국 여행객이 너무 많이 늘어나 차를 타고 호텔로 가는 동안 중국어 간판이 간간이 보입니다. 중국 여행객이 많은 건 세이셸에 좋은 일이지만 중국 여행객은 자신만 있고 남이 없는 게 문제가 되고 있죠. 최고라는 자부심만 있고 기준에 걸맞은 교양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성장이 두려운 건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아니라 중국을 따라 세계가 모두 교양을 버리고 무례해지는 것이다.’ 라는 지적에 중국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프라이빗 비치(Private Beach)를 끼고 앉은 리조트에 숙박을 잡고 두바이 공항에서 사 온 이태리 양주 디사론노(Disaronno)를 홀짝홀짝 마시다 잠이 들었습니다.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으로 몸도 피곤하고 혼자라 마음도 적적해 한 잔만 하려 한 건데, 한 잔이 두 잔, 세잔으로 이어집니다. 28%의 적당한 알코올 도수, 달달한 맛, 여자를 잘 녹인다는 이태리 남자를 닮은 술입니다. 신혼여행을 이태리로 가지 말라는 금기가 유럽인들 간엔 전해온답니다. 신혼여행 갔다가 혼자 오는 수가 있다나요… 그만큼 이태리 남자의 매력과 매너는 수준급이라죠. 여자들은 속는 줄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매력, 일생일대 한번 빠지고 싶은 달콤함이 이태리가 아닐까요… 깨고 나면 후회하더라도, 처음 맛본 술인데 꼭 이태리 같은 술입니다.

[세이셸의 리조트]

겨우 알람 소리에 깨서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카운터에서 체크인할 때 Half Board는 아침, 저녁 포함인데 뷔페식당만 된다고 이야기한 게 기억나서 뷔페식당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다양한 식당이 있네요, 중국 식당 캔톤, 이태리 식당 피자리아, 일본 식당인 데리야키, 혹시나 하고 데리야키에 앉았습니다.
메뉴판을 주기에 열어보니 국수 한 그릇에 $30, 코스는 $150이나 하네요, 거기에 서비스 차지, 세금이 불포함이니 $200은 될 거 같고 음료라도 시키면… 한 끼니 식사로 너무 과하다는 생각에 염치 불고하고 일어났습니다. 손님을 보니 젊은 유럽 연인 두 쌍이 있네요. 그 친구들의 8개의 눈알이 저를 바라보는데 참… 그래도 용기를 내서 데리야키를 나와 뷔페식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자리엔 독일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부부가 앉았는데, 음료도, 맥주도 안 시키고 냉수 한 그릇에 식사를 즐깁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돈은 할아버지 주머니에 더 많을 텐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돈을 풀지 않습니다. 데리야키의 젊은 커플들은 주머니가 그리 여유롭지 않을 텐데 이 밤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아낌없이 흥을 냅니다. 반대여야 하지 않나요… 할아버지는 ‘이미 해 봤는데, 그게 별거 아냐. 할망구한테 무얼 해…’ 그리 말하진 않겠죠!! 암컷에게 잘 보이려는 수컷의 본능은 활동적일수록 강하니 젊은 커플이 무리하는 건 본능이 아닌지요…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무심한 것도 본능이고, ‘남자는 끝났잖아…’

[행복한 표정의 커플]

세상을 많이 살수록 세상이 재미없고 세상을 많이 알수록 신이 안나니, 마음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나요. 내 눈과 마주치자 엄마 품으로 파고들던 아이의 수줍음이 생각납니다. 그 감성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