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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세상에서 제일 큰 열매를 낳는 땅

 

관광청에서 알려준 시간에 맞춰 로비로 나가면 정각에 픽업 차량이 오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이 진행됩니다. 운전사나 가이드는 전혀 팁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감사의 말과 함께 팁을 기분 좋게 건넵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자세가 아주 정겹습니다. 밤에 해안가를 거닐거나 낮에 해안가에 앉아있어도 호객하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물건 사라, 마사지 받아라, 노인부터 어린애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사람이 다가오는 동남아시아의 휴양지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좌판도 질서 있게 해안에서 길 하나 떨어진 곳에 펼쳐놓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규제와 합의가 이루어진 건가요.
자료를 보니 영국이 통치할 때는 거주민이 3,500명, 독립할 때 7,000명이었고 지금은 32,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바다에는 생선, 육지에는 과일, 대충 자기를 위해 살아도 될 만큼 부족하지 않은 삶이 그들의 태도를 만든 모양입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말고, 사면 사고, 안 사면 말고 그런가 봅니다. 그냥 하루를 보내는 일이 전부이고 그게 반복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땅이니 파라다이스의 천사들이라는 표현이 걸맞아 보입니다.
Cat Coco’라는 쾌속선을 타고 두 번째 섬인 프라스린(Praslin) 섬으로 이동합니다. 배에 오르려니 승선권을 보고 승무원이 가야 할 방향을 잡아줍니다. 제 승선권은 급이 낮은지, 2층이나 3층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겠다는 제 의지와는 달리 1층 객실로 안내되었습니다. 1시간을 달린 쾌속선은 섬에 도착했고 역시나 피켓을 들고 운전사가 픽업을 나왔습니다. 마헤 섬에서 저를 여기저기 데려다준 운전사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네요. 이름 물어보고, 따라오라고 하고, 차 문을 열어주며 앉으라고 하는 게 전부네요.
해안을 끼고 지어진 리조트호텔은 새 건물인 듯 시설이 깨끗합니다. 도착한 게 11시 30분인데 2시에나 체크인이 된다며 짐을 맡기고 해안가를 갔다 오든지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로비에서 뉴스를 보며 기다리고 있자니 2시가 지나도 방 열쇠를 안주네요… 같은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여럿인데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줄 서라고 하면 줄 서고, 되었다고 하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니,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엔 ‘돈 내고 왔는데 서비스가 왜 이래?’ 같은 불평이 없는지요… 공짜로 온 저도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기다리다 못해 ‘Vallee de Mai’를 가려 하니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택시를 한 30분 탄 것 같은데, 300루피라고 합니다. 입장료 305루피를 내고 들어가 1시간가량 돌아봤습니다.
다른 땅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대 과일이 세이셸에서 자라는데 그중 엉덩이 모양을 한 코코 마이(COCO MAI)가 가장 유명합니다. 다른 팜 열매보다 두 배나 크기가 큰 팜 나무가 가득합니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비가 오는데도 비 한 방울 맞지 않는 숲 터널을 1시간 동안 걸으며 건강 트레킹을 했습니다. 안내자는 이 나무 저 나무 사연을 이야기하지만, 인간 사연도 기억 못 하는 데 나무 사연까지야… 어찌 돌아갈까, 다시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공공버스가 알아보니 25분에 한 대씩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얼마나 받을까 궁금했는데, 5루피를 받습니다. 택시하고 비교하면 무려 60배 차이인 셈이죠. 버스기사는 친절하게도 호텔 후문에 내려줍니다. 버스 기사가 배려해 주니 택시보다 부족한 게 하나 없습니다.

[다 자란 나무의 잎의 넓이는 6m, 길이는 14m 이며 잎이 단단하고 물이 새지 않아 우산, 지붕, 건축자재등 다양하게 쓰인다.]
[‘Vallee de mai’의 거대한 ‘coco de mer(팜의 일종)’ 터널]
[발이달린 나무. 몰래몰래 내 뒤를 따라오는 것 같다.]
[‘Vallee de mai’의 ‘coco de mer’열매. 마치 비키니를 입은 여성 같다.]

석양 한번 보자고 해안가를 어슬렁거리다 마을을 돌아봤습니다. 작은 섬인데도 게스트 하우스가 여럿 보입니다. 그렇겠죠… 젊은 여행자들도 많은데 리조트에 머물지는 않을 테고, 그들을 위한 숙박지가 없을 리 없죠. 버스비도 이리 싸고 게스트 하우스 맞은편에는 마트도 있습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저렴하게 세이셸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겠죠… 세이셸이라고 비싼 리조트만 있겠습니까. 동남아 수준은 아니라도 젊은이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게 더 파라다이스 같아 보입니다.

[프라스린 섬에는 젊은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일정 시간이 되어야만 술을 파는 상점, 맥주을 달라는 손이 철창 안으로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