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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 기후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땅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어느 의사가 병원을 찾았다. 친구였던 정신과 의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바라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런 곳이 어디냐고 묻자, 정신과 의사는 “그곳은 편안하지도 안락하지도 않다.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지만 외롭지 않다.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곳이라면 수면을 취하는 것 밖에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자 정신과 의사는 멀리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루 종일 바라봐도 피곤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은 곳, 하늘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의사는 진지하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나의 분노는 사라질까?

정신과 의사는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노는 갇혀있는 마음이야, 저 들판이 너의 마음을 풀어 줄 거야”

볼리비아에서 전 그런 대지와 마주했습니다. 이제 저도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이 일어나는 분노를 잡을 수 있을까요?


짚차는 알티플라노고원(4,000m 이상의 고원)을 하루 종일 달립니다. 하루 종일 달리는 것이 좋은 이유는 차를 타기 때문이 아닙니다. 달려도 끝이 안 보이는 평원을 달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평원에 저의 분노를 놓고 가야겠습니다. 다시 찾아올 때까지만요.

소금 호텔을 출발해 꼴차니(Colchani)라는 마을에서 1시간가량을 기다렸습니다. 이유는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이 근처의 주유소는 여기 한 곳뿐입니다. 많은 차들이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립니다. 저는 그동안 한국 국기가 펄럭이는 식당을 찾았습니다. 식당은 볼리비아 사람이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 여행객의 안전을 위해 운영되는 연락 사무소 역할도 합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한국인 안전 대책이라는 책을 건넵니다. 받은 책을 읽으며 기다리니 주유가 끝나고 출발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알티플라노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약 2시간을 달려 차가 멈춘 마을은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이라는 마을입니다. 처음 도착한 마을이기도 하고 오늘의 숙박지인 비냐 델 마르(Vina del Mar)까지 가는 도중에 유일한 마을입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받은 인상은 라파즈와는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청결하고 집들도 짜임새가 있습니다. 중심 광장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고 흔한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 없었습니다.

이곳이 볼리비아가 맞나요? 산 크리스토발 마을은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모여 사는 마을입니다. 보통 광부라고 생각하면 삶의 질이 낮을 것이라는 제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볼리비아의 월평균 소득이 약 $200인데 광부의 소득은 $1,000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광산에서 제공되는 각종 혜택들이 있으니 짧은 기간 동안 목숨 걸고 몸 상하며 일을 할 만도 합니다.

볼리비아 광산의 역사는 불행의 역사입니다. 미국의 골드러시(Gold Rush)가 서부 개발을 가져왔고 미국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던 반면 남미에서는 이것이 불행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둘 간의 차이는 독립 국가인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그리스나 로마 공화정 이후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 국가는 미국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미국의 성장과 급격한 발전의 기저에는 골드러시라는 광산의 역사가 아니라 도전적이며 개방적인 사회의 에너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볼리비아와 견주어 본다면 더욱 그런 사실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ALTIPLANO
노을이 지고있는 알티플라노

스페인은 볼리비아 포토시(Potosi)와 멕시코 사카테카스(Zacatecas)에서 거대한 은광을 개발했습니다. 두 광산에서 채굴된 은(銀)은 1,600년 전 후로 전 세계 은 채굴량의 약 89%를 차지했습니다. 그 중심이 포토시이며 사카테카스였고 두 도시는 은이 채굴되는 동안 남미 최대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이 가져간 은은 왜 스페인을 미국으로 만들지 못했을까요?

어느 학자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스페인 빈곤의 원인은 바로 스페인의 부(富)에 있다.”

스페인의 부는 국민의 부가 아닌 왕실과 귀족에게만 한정된 부였습니다. 왕실은 사치를 넘어 은이 가져다주는 부만 믿고 불필요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스페인 왕실은 1557 ~ 1647년 사이에 무려 6번의 파산을 선언해야만 했습니다.

남미 대륙에서 가장 은이 많이 생산되던 시기였음에도 파산을 선언할 정도로 스페인 왕실은 무분별했습니다. 귀족들도 향락적인 생활에 젖어 중국의 비단, 이슬람의 유리 제품, 프랑스의 사치품, 영국의 직물들을 사들였습니다. 이 덕에 돈은 중계 무역을 했던 제노아와 네덜란드, 사치품을 만들어낸 프랑스, 영국의 금고에만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은은 도로를 건설하고 향만을 확충하여 운송 능력을 늘리고 공장을 지어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유럽은 비약적이었던 사회를 은의 유입으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즉 은이 유입되면서 통화량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일어나면서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선순환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스페인은 유럽을 흥분시켰고 발전의 맨 앞에 있었음에도 스페인만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의 빈곤 원인을 미국의 성장으로 견주어 보면 절대 왕정과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 가능성을 향해 뛰는 열린 사회와 과거의 가치에 집착하는 폐쇄적인 사회, 국민이 주인인 민주 사회와 그렇지 못한 독점 사회의 차이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불행히도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가여운 나라였습니다.

인디오가 농노에서 임금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게 된 노예 해방은 카사스 신부의 ‘인디아스 보고서’로 인한 유럽 각국의 비난 여론, 그 외 현지 대 농장주들이 비대화되며 통제가 어려워진 정치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스페인 왕실은 인디오를 노예가 아닌 스페인 황제의 신민으로 선언하는 신 헌법(Leyes Nuevas)을 1542년 공포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인디오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고 원주민을 대체하여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원주민 환경은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농노에서 임금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을 뿐 처절하고 고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먼지 가득한 갱도에서 이틀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코카 잎을 씹으며 일했고 갱도 밖으로 나와도 얼마 쉬지 못하고 다시 갱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혹독한 생활이었기 때문에 광부들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 다반사였습니다. 얼마나 그들의 노동이 고되었으면 광부들의 노동력 상실을 우려해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모색합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휴식이었습니다. 몇 시간마다 지상으로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의무로 정해질 만큼 원주민들의 치사율이 높았습니다. 농노에서 광산 임금 노동자로의 변신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합니다.

유럽은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은을 필요로 했고 스페인 왕실은 대리인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결국 농노에서 해방된 원주민들은 광산 임금 노무자로 흡수되었을 뿐이니 신민이 되었다지만 원주민들은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유럽의 산업화와 선진화는 볼리비아 광부의 덕이 아닐까요? 그런 과거에 비하면 현재의 광산 노동자들은 남부럽지 않은 직업입니다.

이들이 일하는 광산은 투기 자본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투자한 광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가치를 불려 팔고 나갔지만 처음의 개발은 그의 투자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와이나 포토시(Huayna Potosi)로 가는 길에 산을 이룬 광부의 무덤은 볼리비아의 광부 조합이 공산 세력의 지지층이었고 군부 정권 최대의 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광부들이 볼리비아에서 가장 저층을 형성할 것 같지만 산 크리스토발 마을의 광부들은 가장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요, 혁명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 투기 자본과 국제 자본 시장이 가져다준 혜택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정치화된 세력은 자기의 가치만을 주장합니다. 멕시코 혁명은 농민, 빈민, 시민의 3대 세력이 합심하여 구세력을 몰아냈지만 성향이 다른 세력은 끝장나는 내전을 시작했고 상대를 누르고서야 승리자가 정해지며 총을 내려놓습니다.

볼리비아도 좌파 혁명, 쿠데타, 좌파 쿠데타, 우파 쿠데타의 갈등이 반복되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국민 의식이 생기고서야 멈추었습니다. 민주 의식이 성숙되어야만 사회의 정치가 안정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회 안정과 번영을 위해 쿠데타와 혁명을 일으킨다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쿠데타든 혁명이든 멀리해야 할 구태일 뿐입니다. 혁명과 쿠데타를 멀리하고 민주 의식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교훈 때문입니다. 쿠데타나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좌우를 불문하고 모두 탐욕스러웠고 본인들만의 지배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스스로 자각하고 나서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광부들은 어떻게 높은 소득의 열매를 얻었을지 생각해보면 혁명도 쿠데타도 아닌 자기 권리와 의식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쿠데타나 혁명보다 무서운 민주 사회를 열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민주화 지수는 충분한가요?

산 크리스토발 마을을 지나 광야를 달리면 저 멀리 단단한 암반 대지가 솟아 있습니다. Rock Valley라 불리는 이곳은 절편을 올려놓은 듯 평편한 대지에 단단한 붉은 암석 지대입니다. 알티플라노고원의 산증인이기도 한 암석층은 1,800만 년이거나 그전에 생겨난 용암대지입니다.

안내자 파블로는 오늘도 백악기 타령입니다. 백악기에 생겨난 용암대지라 우깁니다. 백악기든 신생대 3기이든 약 62km에 걸쳐 펼쳐진 용암대지는 풍화로 깎이고 다듬어져 각종 사물의 모습을 하며 현재도 10 ~ 30m 높이의 물체로 남아있습니다. 반면 바닥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모래와 작은 돌이 뒤섞인 전형적인 화산 쇄설물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화산이 터지면서 쇄설물들이 넓게 퍼져나갔고 후에 밀도가 높은 마그마가 흘러나와 약 62km의 대지를 덮은 것 같습니다.

긴 세월 동안 용암 암반에 흡수된 수분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암반을 바위로, 바위를 작은 돌로, 돌을 모래로, 모래를 먼지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해 바닥에 두껍게 쌓이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합니다. 용암 암반을 만져보니 모래와 같이 부스스 떨어져 나갑니다.

암석 표면에는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기도 합니다. 한눈에 봐도 약해 보입니다. 파블로는 구멍이 라바 벌룬(Lava Balloon)이라 불린다고 말합니다. 용암이 터져 대기로 솟구치며 일부 공기를 포집한 채 굳어버려 생긴 구멍이라는데 그보다는 내부의 열기로 가스층이 생겼다 굳는 과정에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풍선의 원리라 할까요?

용암은 여러 가지의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하늘로 분출된 용암은 찬 대기와 만나게 되는데 높이 솟구친 용암은 적은 양이므로 작은 돌멩이가 되고 큰 덩이는 보다 큰 돌멩이로 땅에 떨어집니다. 즉 분출 시 대기로 튕겨나간 용암의 크기에 따라 돌의 크기가 정해집니다. 때로는 공기를 흡수한 채 굳어져 부석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석엔 공기층이 많아 물에 둥둥 뜨게 됩니다. 반면 젤리 형태로 흐르는 용암은 천천히 흐르면서 단단한 용암 대지를 만들지만 매우 뜨겁기 때문에 물처럼 튀어 오르다 라바 벌룬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엔 갑자기 찬 공기와 만나 안은 뜨거운데 밖은 급속히 식어버리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럴 때 생기는 것이 주상 절리라고 합니다. 이렇듯 주변 환경에 따라 용암 대지는 다양한 형태로 펼쳐집니다. 바위 표면을 뜯어내며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용암은 본래 강한 암석이 아니어서 약 1,800만 년의 세월 동안 풍화가 되었고 그로 인해 떨어져 나간 잔재들이 들판을 덮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렇다면 용암 대지는 약 62km가 아닌 더 넓었을 수도 있습니다. 알티플라노의 절반을 덮을 만큼 거대한 용암 대지였는지도 모릅니다.

알티플라노의 일부분인 우유니 역시 경기도와 서울을 합한 면적보다 큽니다. 얼마나 거대한 분출이 있었을까요?
바다 속이었던 땅을 약 4,000m가 넘는 고원으로 끌어올린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어서 그저 혀를 차고 맙니다. 인간은 그만 자만하고 자숙해야 될 것 같습니다.

파블로는 숨겨진 계곡으로 안내하겠다며 다시 잡아끕니다. 그가 소개하는 숨겨진 계곡의 이름은 백악기 계곡(Katal Valley)입니다. 그와 저 사이에는 다시 백악기 논쟁이 시작되었지만 저는 대지의 순박함에 논쟁을 접습니다.

Rock Valley와 달리 Katal Valley에는 물이 있습니다. 메마른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그것도 개방된 것이 아닌 20 ~ 30m 높이의 용암 대지가 밀도 있게 병풍으로 숨겨진 샘터입니다. 어딘가에서 물이 솟아나 숨겨진 계곡은 촉촉한 늪지로 덮여있었고 최근에 발견되었는지 지프의 바큇자국이 몇 개 없습니다.

“이 사람아 여긴 안내하지 마, 내가 마지막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렇게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계곡을 누구나 좋아할 텐데 어찌해야 할까요, 감추어두고 규제해야 하나요 아니면 개방하되 보호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나요?

르웬조리를 등반했을 때 Tusook이라 불리는 풀의 뿌리가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도 풀의 뿌리가 한데 뭉쳐 빠지지 않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총총 뛰어넘으며 늪지를 건너가니 암벽에 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한 물줄기가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꽤나 큰 호수에는 다양한 새들이 물놀이를 하며 한가로움을 즐깁니다. 계곡은 엄마의 품같이 포근하고 촉촉해서 걷는 내내 행복합니다. 푹신한 발의 촉감도 신선한 공기의 흐름도 모두 쾌적합니다. 누가 뭐래도 자연은 인간을 순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착해지고 순해지는 것은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알티플라노를 이틀 달리면 마지막으로 안데스를 넘게 되고 안데스를 넘으면 달의 계곡이 있는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에 닿게 됩니다. 그렇기까지 광대한 벌판과 그 안에 숨겨진 미로 찾기는 계속됩니다.

진흙 화산(Mud Volcano), 간헐천(Geyser), 플라밍고(Flamingo) 등 인적 없는 황야건만 길이 잘 닦여 있습니다. 숨겨진 무언가를 캐가는 덤프트럭과 하얀 소금 벌에는 포그레인이 우렁찹니다. 소금 벌의 흙은 붕산(Boric acid)이 많아 칠레 공장으로 가져가 정재한 후 붕산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붕산은 어릴 때 집집마다 비상 약으로 가지고 있을 만큼 가정 비상약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날카로운 것에 베었을 때,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 타박상을 입었을 때까지도 어머니는 붕산 가루를 들고 오셔서 상처 부위에 뿌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는 법랑의 안료로 쓰이기 때문에 화약 약품으로 팔려나가는 값비싼 재료라고 합니다.

알티플라노에 광물질과 미네랄이 많은 이유는 나스카 판 때문입니다. 약 1,800만 년부터 밀어붙인 나스카 판은 대지를 들어 올려 알티플라노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바닷물과 미네랄이 풍부해진 해저가 육지로 되면서 지금의 우유니와 같은 붕산 광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판과 지판이 서로 충돌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가 많은 광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알티플라노에는 은뿐 아니라 리듐 등 여러 광 물질이 많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는 광산이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미래 볼리비아의 풍요는 광산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기에 광산은 볼리비아인들에게는 애증의 세상입니다.

남미에서는 광물질로 인해 전쟁을 해야 했던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범인은 붕산도 은도 아닌 초산입니다.

초산(Acetic acid)은 화약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원료입니다. 초산과 붕산은 약산으로 비슷한 성분을 갖고 있는 물질입니다. 알티플라노를 달리며 본 광산이 붕산이기도 하고 초산이기도 한 듯합니다. 초산에 유황을 넣어 만든 화약은 20세기만 해도 가장 질이 좋은 화약이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은 갓 독립했던 페루와 칠레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페루와 상호 방어 조약을 맺은 볼리비아가 의무적으로 참전하며 페루-볼리비아 연합국과 칠레가 약 4년간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수적으로는 불리했지만 칠레는 독일로부터 고도의 군사 훈련을 받은 군대였기 때문에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유럽에 이런 조크가 있습니다.

“유럽의 천국은 영국 경찰관, 프랑스 요리, 이탈리아인의 사랑, 독일의 엔지니어링을 스위스인들이 조직할 때이고 유럽의 지옥은 영국의 요리,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스위스인의 사랑, 독일 경찰을 이탈리아인들이 조직한 것이다.”

독일의 엔지니어링은 최고이고 스위스인의 합리성이 더해지면서 최고의 효과를 보지만 독일 경찰은 난폭하여 낭만적인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며 무자비한 폭력 집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독일의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았던 칠레의 승리로 종결됩니다. 그로 인해 안데스를 넘어 광활한 아타카마 사막은 모두 칠레의 영토로 귀속됩니다.

ALTIPLANO
노을이 지고있는 알티플라노

하루 종일 급하게 내달린 알티플라노는 푸르고 짙은 라구나 베르데(Laguna Verde)에서 리칸카브르(Licancabur)와 마주하는 것으로 볼리비아를 떠납니다. 호수에 비친 리칸카브르는 마주할수록 가슴이 시리고 절절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물빛은 짙은 청색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초록 호수로 불립니다.

호수 아래로 가라앉은 산은 줄대로 줄어들어 바람이 멈출 때까지 물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물체는 질량이 높을수록 무거울수록 부피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리칸카브르는 줄어들수록 질량이 높아지고 무거워져 호수를 휘젓습니다.

안데스 고개(4,900m)를 넘으면 버스는 아타카마(2,600m)까지 쉬지 않고 고도를 낮춥니다. 비로소 약 4,000m의 고도가 깨지고 우유니(3,700m), 쿠스코(3,400m)와 같은 3,000m의 고도로 진입합니다. 고도계를 보며 고원에 머문 지난 10여 일간을 돌이켜 봅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실제 주인공인 열차 강도 ‘버치 캐시디(Butch Cassidy)’와 ‘선댄스 키드(Sundance Kid)’는 알티플라노의 작은 마을, 산 비센테(San Vicente)에 숨어 지내다 최후를 맞습니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던 희대의 도둑인데 아마도 땅속에 묻힌 것들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LAGUNA VERDE
초록호수라고 불리우는 라구나 베르데

아타카마는 달의 계곡으로 유명한데 그 유래는 NASA에서 달에 보낼 우주인을 아타카마에서 훈련하며 붙여졌다는 것과 달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어서 붙여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 강수량이 측정 불능일 정도입니다. 비가 내려도 대기 중에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에 꼽힙니다.

페루에서부터 이어진 이까-나스카-아타카마의 사막 벨트는 결국 흄볼트 해류와 적도의 강렬한 태양의 작품입니다. 아타카마는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변화한 지질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데스가 융기하면서 바닷물은 점차 낮은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통로가 아타카마였고 안데스의 융기와 함께 시작된 화산 활동은 곳곳에 갇힌 바닷물에 화산재를 쏟아부어 질퍽한 진흙 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이 진흙이 굳어 단단한 지층을 이루면서 아타카마의 지층에는 소금 결정체가 생긴 것입니다.

새롭게 만난 아타카마의 안내인 마리솔은 아버지가 독일인이고 어머니가 이태리인인 멋쟁이입니다. 그녀는 생태보호구(Ecological Area)라고 불리는 아타카마의 계곡을 안내하며 생태보호구라는 말을 재차 강조합니다.

처음 발걸음을 멈춘 자연의 소금 벽은 여기저기 균열된 흔한 진흙 벽입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 요청합니다. 눈을 감고 한참을 기다려도 바람소리 이 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을 뜨니 그녀는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합니다. 신선놀음도 아니고 도의 경지에 올라야만 들리는 소리인가? 다시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우니 작지만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아 맞다. 들린다.” 맞장구를 치자 그녀는 소리에 대해 설명을 해줍니다.

진흙에 소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보니 진흙 벽이 견고하지 않아 갈라지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저 벽 어딘가에서 지금도 조금씩 땅이 갈라지고 있다 생각하니 재미난 상상입니다. 유목민들은 성을 지을 때 외벽에 바르는 진흙을 낙타 젖에 개어 벽에 바릅니다. 그렇게 하면 더욱 단단해지고 깨져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물 외벽의 벽돌 사이는 줄 눈 시멘트로 메우는데 줄 눈 시멘트를 갤 때는 막걸리를 한 통 붓습니다. 막걸리는 하얗게 피어나는 백화 현상(시멘트의 알칼리 성분과 공기 중의 탄산 성분이 반응하여 흰색 가루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물 이외 다른 물질이 강도와 효율을 높이는 일을 합니다. 화산재가 풀풀 날리는 대지를 소금은 꽉 잡아주어 단단한 땅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타카마는 온통 먼지 구덩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흙과 흙을 결속시켜 단단한 지층을 만들었건만 떨어져 나가려는 놈들이 항상 말썽을 부리니 지금 들리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라기보단 소금이 먼지를 가두는 유쾌한 리듬인 것 같습니다.

생태보호구로 불리는 계곡을 조금 더 들어가니 진흙 벽을 파고들어간 동굴이 나옵니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진흙을 파고 들어가 동굴에 주거를 만들었습니다. 천장이 높고 천장 한가운데 큰 구멍을 뚫어 연기 통로로 쓰이기도 하고 햇빛이 들어와 안을 밝히는 역할로도 유용해 보입니다. 해가 정오에 직선으로 들어온다니 여기가 자외선의 정점인가요, 그들의 문명 단계가 높았던 모양입니다.

마리솔은 저의 의구심을 눈치챘는지 테오티우아칸의 문화, 원주민들의 문화 그리고 식민지 문화를 아타카마의 3대 문화라고 요약합니다.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이들을 이렇게 높게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달의 표면과 비슷하게 생긴 달의 계곡

아타카마는 달의 계곡에 불을 붙이는 일몰로 유명합니다. 일몰이 시작되면 붉은 대지는 멋지게 타오릅니다.

불구덩이 건너편으로 리칸카브르가 우렁차게 서성입니다. 아타카마의 원주민들은 신에 대한 자기희생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리칸카브르에 올라 자기 자신을 봉양하는 희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희생 의식은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이나 마야에서 특히 흔하게 행하여졌습니다. 마야의 왕은 주기적으로 선인장 가시로 혀에 구멍을 뚫거나, 가오리 뼈로 만든 송곳으로 자신의 성기를 찌르는 등의 희생을 거행했고 백성들은 왕의 자기희생 의식을 보며 절대적으로 추종했습니다.

왕이 전쟁에 나가 자리를 비우면 왕비는 왕이 돌아올 때까지 희생 의식을 대신하였다고 합니다. 마야인들에게 자기희생 의식은 천상 13계와 지하 9계를 통합하는 의식이며 이 의식을 통해 신의 아들로서 왕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유지하였습니다.

마야나 아프리카 피그미족은 자기희생 의식을 성스럽게 행하였는데 그런 영적인 분위기가 때로는 자살 의식으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마야의 자살과 피그미족의 집단 자살은 외부로부터 견디기 힘든 위험이 닥쳐올 때 스스로 행하는 의식이기도 하지만 종교적 열의에 의해 선택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유태의 마사다 요새만이 아니고 사이비로 분류되는 종교 집단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자기희생 의식은 희생을 통해 승화를 꿈꾸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야는 칼을 스스로에게 향하게 했던 반면, 잉카나 아즈텍은 칼을 외부로 향하게 했습니다. 리칸카브르의 자기희생 의식도 잉카에 이르면 인신 공양으로 바뀝니다. 젊은이들을 발가벗기고 정상에 올려 신의 재물로 희생하게 만든 그들의 의식은 분명 왜곡된 집착으로만 보입니다.

마야는 자기를 희생했고 잉카와 아즈텍은 남을 희생의 재물로 삼았습니다.
마야에 비해 잉카와 아즈텍의 수준이 낮은 이유가 스스로의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 습성 때문은 아닐까요.